시각이 아닌 청각으로 보는 진실|《추락의 해부》 감상문
2025년 4월 5일 토요일 와이프와 함께 모처럼 조용한 주말 저녁을 보내기로 했어요.
평소에 저희 둘 다 프랑스 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진중한 드라마를 원하던 터라 고민 끝에 선택한 영화가 바로 《추락의 해부》였습니다. 이미 아주 훌륭한 영화라는건 들었습니다.
제목만 봐서는 다소 무거워 보였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죠.
그리고 실제로 영화가 시작된 이후, 우리는 거의 두 시간 반 가까이를 말없이, 숨도 크게 쉬지 못한 채 스크린에 몰입해 있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몰입해서 본 영화였어요.
1. 《추락의 해부》는 어떤 영화인가요?
이 작품은 프랑스 알프스 외곽의 외딴 집에서 벌어진 ‘남편의 추락사’에서 출발합니다.
사망한 남편의 아내인 산드라는 사건의 주요 용의자로 지목되고, 이 사건이 ‘자살인가, 사고인가, 아니면 타살인가’를 두고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죠.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법정 드라마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영화의 진짜 묘미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관객이 진실을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증거도, 증언도, 심지어 플래시백 장면조차 ‘믿어도 될까?’ 하는 불확실함이 깔려 있습니다.
2. 우리가 느낀 영화의 핵심 포인트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시각이 아닌 청각’이 중심이 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유는 주인공 부부의 아들 ‘다니엘’이 시각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사건 당시 그가 의존할 수 있었던 건 소리뿐이었고, 영화 속 핵심 증거인 녹음 파일 역시 온전히 ‘청각’에 기반하고 있죠.
우리가 보통 믿는 ‘시각적 정보’가 얼마나 불완전한지, 그리고 들리는 정보가 얼마나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 있는지를 이 영화는 정면으로 묻고 있었어요.
또 하나 흥미로웠던 건 영화의 제목에 담긴 상징성.
영화 초반,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공과 그걸 쫓는 개 ‘스눕’의 모습은 단순한 오프닝이 아니라, 이 가족의 관계가 어떻게 무너졌고, 또 회복을 원하는 마음이 어디 있는지를 암시하고 있었죠.
3.기억에 남는 장면들
개인적으로 가장 강렬했던 장면은 법정에서 녹음 파일이 재생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카메라는 과거로 전환되며 산드라와 사무엘의 언쟁을 ‘보여주지만’, 곧 우리는 이 장면이 실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시각적 재현이 진실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그걸 보는 관객이 만들어낸 ‘상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죠.
마지막 장면도 인상 깊었어요.
재판이 끝나고 산드라가 남편의 작업실 소파에서 잠이 들고, 그 곁으로 개 스눕이 다가와 함께 잠드는 장면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어요.
위로일 수도 있고, 공허일 수도 있고,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겠죠.
4. 함께 본 감상으로 남는 것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와이프와 우리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어요.
“정말 산드라가 범인일까?”, “사무엘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다니엘의 증언은 진심이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해 명확한 답은 없었지만, 그 덕분에 더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정답’을 주지 않는다는 점.
대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 과정을 통해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이죠.
그게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이라고 느꼈습니다.
결국 아들 다니엘에 이야기했던것처럼.. 어떻게가 아니라 왜? 라는 접근으로 다가가야하고, 다가갈수록
어두운 그들의 이면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5. 마무리하며
《추락의 해부》는 단순한 추리 영화도, 평범한 법정 드라마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관객 각자가 스스로 결론을 내리게 만드는 심리적 해부극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는 너무 잔인한 해부였습니다.
한 가족의 내밀한 감정과 갈등, 부부 사이의 균열과 책임까지… 전부 가감 없이 드러났고, 그 민낯은 때로는 너무나 안타깝고 슬펐습니다.
부부의 삶이 그렇게 낱낱이 해부되어야만 했던 이유, 그리고 그 결과로 남겨진 감정들은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았어요.
와이프와 함께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진실을 밝히는 것’이 꼭 정의롭기만 한 일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관계를 바라보는 방식, 기억과 감정이 얼마나 유동적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어요.
누군가에게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진중하고 깊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한 번 보셨으면 해요.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 당신은 어떤 ‘진실’을 선택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