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6. 16:27ㆍ여행 & 일상
2018년 가을.
정확한 장소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의 공기와 햇살, 그리고 너의 미소만은 아직도 선명하다.
어딘가로 달려갔던 우리.
그날따라 마음이 유독 말랑했고,
계절은 천천히 익어가고 있었다.
무작정 도착한 곳엔
몽글몽글 피어난 핑크뮬리가 우리를 반겼다.
너는 빛을 머금은 얼굴로 그 앞에 섰고,
나는 숨죽여 바라보았다.

햇살은 따뜻했고,
하늘은 끝도 없이 파랬다.
너는 눈을 가늘게 감고 웃고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이 계절과 한 몸처럼 보였다.
그날의 너는 말보다 표정이 더 많은 걸 말해주었고,
난 그저 조용히 바라보는 걸로 사랑을 표현하던 시절이었다.
꽃보다 더 아름다웠던 건,
그 꽃 사이를 걷는 우리의 그림자였다.
너와 나 사이엔 말 대신 바람이 있었고,
우린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걸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도시의 풍경이 꽃밭 너머로 스며들었다.
아파트와 공사 크레인, 그 앞에 선 네 모습.
묘하게 어울렸고, 또 따뜻했다.
사람이 풍경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이날 처음 느꼈다.
어디든 네가 서 있으면
그곳이 가장 예쁜 배경이 되었으니까.

길게 이어진 코스모스 사이로
너는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그 뒤를 따라가며
이 장면을 마음속에 꼭 붙들어두고 싶었다.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길 위에서
우리는 손을 꼭 잡지도 않았고,
누가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지만,
그 시간이 너무 따뜻해서
조용히 행복할 수 있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남긴 몇 안 되는 셀카.
햇살이 따갑고 눈이 부셔도
우린 정말 잘 웃었다.
네가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세상이 조금 더 괜찮아 보였던 순간들.
나는 그날의 너를 참 많이 찍었고,
참 많이 바라봤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도 참 많이 좋아했다.

그날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
우린 음악을 크게 틀지도 않았고
길게 얘기를 나누지도 않았지만
그 침묵마저 편안했다.
사랑은, 그렇게 말없이 깊어지는 거라고
그때 처음 느꼈다.
이제는 그 시절 연애가
지금의 아내와의 추억이 되었고
그날 함께 걷던 이 길은
마음 한켠에서
아직도 따뜻하게 반짝이고 있다.
계절은 돌아오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어떤 감정은
한 번 피어났다가,
영원히 남는다.
이 글을 남기는 지금도,
그날의 너는 여전히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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